
지금은 한국 영화계를 상징하는 거장이자 이름 석 자만으로도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는 배우 최민식과 송강호.
그러나 두 사람에게도 내일의 끼니조차 장담하지 못한 채 대학로와 충무로 바닥을 전전하던 가난하고 혹독한 무명 시절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배고팠던 청춘의 가장 어두운 곁에서 묵묵히 따뜻한 밥을 사고 나아가 영화 인생의 길을 터준 든든한 버팀목이 있었다.

바로 1990년대 충무로의 독보적인 흥행 보증수표이자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이끈 배우 한석규다.
1990년대 중후반, 한석규의 위상은 그야말로 대체 불가능했다. 드라마 ‘서울의 달’로 전국적인 신드롬을 일으킨 데 이어 영화 ‘은행나무 침대’, ‘초록물고기’, ‘접속’ 등을 연이어 대히트시키며 충무로 최고의 티켓 파워를 자랑했다.
정상의 자리에서 최고의 몸값과 대중적 인기를 누리던 그였지만, 그의 시선은 언제나 함께 연기 열정을 불태웠던 배고픈 동료들에게 닿아 있었다.
한석규는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선배인 최민식이 연극 무대와 단역을 오가며 생활고로 힘겨워할 때 늘 곁에서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다. 극단 연우무대 출신으로 라면 한 봉지로 하루를 버티기 일쑤였던 신인 배우 송강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한석규는 주머니 사정이 팍팍했던 두 사람에게 수시로 밥과 술을 사며 기운을 북돋웠고, 자신의 친형이 운영하던 매니지먼트에 두 사람을 함께 둥지 틀게 해 실질적인 한솥밥 식구로 만들었다.
단순한 식사 대접에 그치지 않았다. 한석규는 두 사람의 비범한 재능을 누구보다 확신했기에 자신이 참여하는 작품마다 제작진을 향해 최민식과 송강호를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그 결실로 탄생한 레전드 작품이 바로 1997년 영화 ‘넘버 3’였다. 타이틀롤을 맡은 한석규의 곁에서 최민식은 욕쟁이 검사 마동팔 역으로, 송강호는 불사파 두목 조필 역으로 전설적인 명장면을 남기며 충무로의 중심에 우뚝 섰다.
이들의 두터운 신뢰는 1999년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신기원을 연 ‘쉬리’로 이어져 한국 영화사의 판도를 완전히 뒤바꿨다.
최민식과 송강호는 훗날 여러 인터뷰에서 가장 힘들고 가난했던 시절 자신들을 믿고 이끌어준 한석규에 대해 깊은 존경과 고마움을 표했다.















댓글1
윤영웅
반대 아닌가요? 최민식이 한석규를 드라마에 넣어준거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