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 한국 연예계를 뒤흔들었던 배우 조용원은 그 시절을 기억하는 많은 이들에게 아련한 그리움과 감탄을 자아내는 독보적인 스타다.
요즘 대중이 흔히 말하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탑티어 배우’의 원조 격인 인물로, 커다랗고 맑은 눈망울과 이국적이면서도 순수한 마스크 덕분에 당대 최고 미인의 아이콘으로 군림했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청춘스타 ‘소피 마르소’에 비견되는 당대 최고의 미인이라는 찬사가 늘 그녀의 이름 앞에 따라붙었으며, 단숨에 책받침 여신이자 최고의 하이틴 스타로 떠올랐다.
조용원의 데뷔는 1981년 미스롯데 선발대회였다. 이후 1983년 KBS 공채 탤런트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그녀는 단순히 예쁜 스타에 머무르지 않았다.

1984년 하명중 감독의 영화 ‘땡볕’에서 주인공 ‘순이’ 역을 맡아 신인답지 않은 신들린 연기를 선보였다.
이 작품으로 대종상 영화제 신인상과 아시아영화제 신인상을 휩쓸며 평단과 대중의 찬사를 동시에 받았다.

더욱이 학업 성적도 뛰어났다. 당시 대입 학력고사에서 고득점을 기록해 명문대 진학이 충분히 가능했음에도 연기에 대한 열정으로 중앙대학교 연극영화과에 진학해 과 수석을 놓치지 않을 정도로 지적인 면모를 자랑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 했던가. 커리어가 정점을 향해 가던 1985년 11월, 대학교 1학년이던 시절에 청천벽력 같은 대형 교통사고를 당하게 된다.

등교 중이던 차량이 트럭과 충돌하면서 조수석에서 튕겨 나가 얼굴을 포함한 온몸에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여배우로서 치명적인 얼굴 흉터 수술을 수차례 견뎌내야 했고, 이 사고는 그녀의 연예계 활동에 큰 전환점이 되었다.
많은 이들이 이 사고로 그녀가 완전히 은퇴한 것으로 기억하지만, 그녀는 강인한 의지로 복귀해 몇몇 작품에 더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조용원은 카메라 앞을 떠나 내면을 채우는 길을 택했다. 1990년 일본 유학길에 올라 와세다대학 대학원 석사를 거쳐 도쿄대학 대학원 사회정보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학자로서 깊이를 더했다.
90년대 중반 귀국 후에는 영화 주간지 창간, 극단 운영, 방송 콘텐츠 제작자로 변신하는 등 문화 예술계의 기획자이자 사업가로서 활발히 활동했다.

조용원은 방송에서 ‘다시 보고 싶은 스타’로 늘 최상위권에 언급되지만 대중 앞에 전면으로 나서는 것을 고사하고 있다.
비록 전성기는 짧았지만 아름다운 외모뿐만 아니라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와 끊임없는 도전 정신으로 여전히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영원한 여신으로 기억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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