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대한민국 안방극장은 배우 김찬우의 해맑은 미소로 가득했다. 청춘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부터 국민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의 다정다감한 ‘의찬이 아빠’까지, 그는 브라운관을 지배하던 당대 최고의 톱스타였다.
당시 그의 폭발적인 인기를 방증하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바로 90년대 아시아를 주름잡던 최고의 홍콩 스타 임청하에게 그가 청혼을 했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신문 1면을 장식했던 것.

훗날 김찬우는 “그저 임청하 씨의 팬으로서 너무 좋아한다고 말했을 뿐인데, 다음 날 1면에 대뜸 청혼 기사가 나가버렸다”며 톱스타이기에 겪어야 했던 웃지 못할 특급 해프닝을 회상하기도 했다.
송혜교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처럼 찬란하고 화려한 전성기를 누렸지만, 대중이 사랑한 그의 유쾌함 뒤에는 철저히 숨겨진 고통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밖에서 그는 홀로 지옥을 경험하고 있었다. 원인 모를 극심한 공황장애가 그를 덮친 것이다.
쏟아지는 스케줄 속에서도 독한 정신과 약을 삼키며 억지로 촬영을 버텼지만, 병마는 그의 일상을 무참히 앗아갔다.

특히 터널에 들어설 때면 숨이 턱턱 막혀오는 극도의 공포에 휩싸였고, 결국 차를 버려둔 채 터널 밖으로 뛰어나와 도망쳐야 했을 정도로 증세는 심각했다.
설상가상으로 친형의 갑작스러운 비보까지 겹치면서 그는 걷잡을 수 없는 대인기피증에 빠지고 말았다. 카메라 앞에서 늘 환하게 웃던 명랑한 청년은 결국 대중의 시선에서 도망쳐 20년 가까운 뼈아픈 은둔 생활에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끝이 없을 것 같던 어두운 터널에도 마침내 빛은 스며들었다. 20여 년의 기나긴 투병과 침묵을 깨고, 그는 예능 프로그램 ‘불타는 청춘’ 등을 통해 다시금 세상 밖으로 나올 용기를 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50대의 중년이 되어버린 그였지만, 시청자들은 훌쩍 돌아온 ‘의찬이 아빠’를 뜨거운 응원과 환호로 맞이했다.

자신의 깊은 아픔과 지난날의 해프닝마저 담담하게 고백하며 대중과 다시 소통하기 시작한 그는 마침내 마음의 병을 이겨냈다.
그리고 50대의 나이에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 늦깎이 결혼에 골인하며 인생의 제2막을 활짝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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