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본코리아’는 상장 전후로 불거진 원산지 표시 위반 의혹으로 한차례 홍역을 치렀다. 해당 건은 당국의 조사 결과 ‘무혐의’ 처분을 받으며 법적 공방은 일단락되었지만, 이를 계기로 가맹점 관리 체계에 대한 세간의 날 선 시선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대중의 높은 신뢰를 바탕으로 외식 제국을 일궈낸 백종원 대표는 이제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운 책임감을 마주하고 있다.

화려한 성공 이면에 가려진 현실적 과제와 대중의 비판적 시각은, 그가 감내해야 할 오늘날의 무게를 실감케 한다. 그러나 백 대표가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겪었던 과거는 지금의 논란보다 훨씬 더 치명적인 절망의 기록이었다.
과거 백종원 대표는 19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 당시, 승승장구하던 목조주택 인테리어 및 건축자재 유통 사업이 순식간에 무너지며 17억 원이라는 감당하기 힘든 빚을 떠안았다.

당시 그는 건축자재를 수입해 공급하는 사업을 운영했으나, 경제 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며 신뢰했던 이들의 배신과 함께 막대한 채무를 지게 된 것이다.
벼랑 끝에 몰린 그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하고 무작정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왕 죽을 거라면 홍콩에 가서 멋있게 죽자”는 비극적인 결심으로 떠난 홍콩에서 그는 고층 빌딩 옥상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옥상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삶의 마지막을 포기한 채 거리를 배회하던 그의 발길을 멈춰 세운 것은 식당 창문에 걸린 오리고기였다.
극심한 허기 속에서 들어간 식당에서 맛본 홍콩 음식의 놀라운 맛은 그의 생을 향한 의지를 조금씩 뒤흔들었다.

“죽기 전에 내일 딱 한 번만 더 먹어보고 죽자”라며 결행을 하루 미뤘던 것이 이틀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그는 다시 사업가적 본능을 되찾았다.
귀국 후 그는 채권자들 앞에 무릎을 꿇고 “쌈밥집 하나만 남겨달라. 이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으로 반드시 모든 빚을 갚겠다”고 호소하며 재기를 위한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이후 쌈밥집 운영을 통해 빚을 모두 청산하며 지금의 더본코리아를 세우게 되었다. 지금 백 대표는 외식업계의 선두주자로서 갖은 논란의 중심에 서 있고, 그를 바라보는 대중의 온도 차 역시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죽음의 문턱에서 음식에 대한 열정으로 스스로를 건져 올렸던 그 집념이 지금의 그를 만들었지만, 오늘날 그에게 쏟아지는 부정적인 시선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지가 그가 마주한 또 다른 과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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