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수 장미화의 인생사와 근황이 재조명받고 있다. 한국 여성 그룹 최초로 미국 시장에 진출했던 걸밴드 ‘레이디 버드’의 멤버 출신인 장미화는 이후 1965년 대한민국 최초 오디션 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며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시작했다.
1973년에는 히트곡 ‘안녕하세요’를 발표하며 대중적인 전성기를 누렸다.그러나 1979년 결혼과 동시에 선언한 은퇴는 삶의 큰 전환점이 됐다.

MBN 프로그램 ‘특종세상’을 통해 공개된 내용에 따르면, 그녀의 가장 큰 경제적 위기는 이혼 과정에서 발생한 전 남편의 ‘100억 원대 빚’이었다. 당시 강남 아파트 한 채 가격이 4500만 원이던 시절, 100억 원은 상당한 거액이었다.

그러나 장미화는 아들의 양육권을 확보하기 위해 이 채무를 혼자 감당하기로 결정했다. 장미화는 인터뷰에서 “95년도에 한 100억 정도니까… 아파트 몇 채가 날아가는 거다.
이혼 당시 법적으로는 애를 시댁에서 데리고 가게 돼 있었다”라며 복귀 배경을 설명했다. 채무 이행을 위해 하루 12군데의 야간 업소 무대를 소화하는 과정에서 교통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입원 당시에도 선급금 반환을 요구하는 업소 관계자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그녀는 “돈을 달래러 온 그 사람들을 봤을 때 세상이 야박하구나, 너무너무 서러워서 살고 싶지 않았다”고 당시 고충을 토로했다.
결국 장미화는 약 20년에 걸친 활동을 통해 해당 채무를 전액 청산했다. 그러나 이후 시작한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다시 금전적 손실을 입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조기 폐업에 더해, 신뢰하던 매니저의 금전 사고가 겹쳤기 때문이다.
통장을 맡길 정도로 신임했던 매니저가 회사 자금에 손을 대고, 장미화의 이름을 사칭해 주변 지인들과 상인들로부터 돈을 빌려 잠적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투자에 참여했던 사진작가 아들까지 재정적 부담을 지게 됐다.

장미화는 “상처 정도가 아니다. 꼭 친한 사람이 사기를 친다. 진짜 그런 사람인지 정말 몰랐다”며 “왜 나 모르게 내 이름을 대가면서 내 핑계로 돈을 갖다 썼느냐”고 전했다.
여러 역경에도 장미화는 21년째 소외계층을 위한 자선 바자회를 지속하고 있다. 여든을 앞둔 나이에도 무대와 사회공헌 활동을 병행하는 상태다.

장미화는 지나온 삶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당시 100억을 다 가졌다면 행복했을 것 같지만, 그랬다면 나눔과 봉사도 몰랐을 것이다. 아들과 함께해 행복하다.”
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비와 나눔의 가치를 강조한 장미화는, 과거의 채무와 배신으로 인한 역경을 모두 극복하고 현재 묵묵히 개인 활동과 봉사에 전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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