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 화개장터 비하인드

조영남은 단순한 대중음악인을 넘어 성악과 가요를 넘나드는 독보적인 가창력과 거침없는 입담으로 시대를 풍미했던 풍운아였다.
‘가수’라는 본업 외에도 화가, 작가 등으로 활동하며 늘 화제의 중심에 섰던 그는 1988년, 자신의 인생뿐만 아니라 한국 가요사에 길이 남을 불후의 명곡 ‘화개장터’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 곡은 당시 전라도와 경상도의 경계인 화개장터를 배경으로 영호남의 화합과 정을 노래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발표 직후 ‘화개장터’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부르는 국민 가요로 자리 잡았으며, 조영남은 이 노래 덕분에 30년 넘게 전국 행사 섭외 1순위를 고수해 왔다.

그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노래 하나로 평생 먹고산다”고 회고했을 만큼, 이 곡이 지닌 경제적 가치는 상상을 초월했다.
실제로 ‘화개장터’는 저작권료, 행사 수익, 방송 실연료 등을 합산하여 최소 50억 원 이상의 경제적 부를 창출해 조영남을 청담동의 자산가 반열에 올린 결정적 토대가 되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이 곡의 탄생 뒤에는 알려지지 않은 흥미로운 사연이 있다. 당시 미국에서 막 돌아온 김한길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한국 사회의 심각한 지역감정을 목격하고, 이를 해결할 방법으로 노래를 택했다.
그는 조영남에게 작사한 가사를 건네며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했지만, 조영남은 처음에 제안을 거절했다. 사랑 노래가 아닌 ‘건전가요’ 느낌이 강하다는 이유였다.

조영남을 노래를 부르게 만든 전략
이에 김한길은 기발한 ‘1+1 전략’을 내세웠다. 조영남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서정적인 곡인 ‘사랑없인 난 못 살아요’의 가사를 함께 써주는 조건으로 ‘화개장터’를 부르게 한 것이다.
결국 조영남은 이 파격적인 제안을 받아들였고, 두 곡 모두 대히트를 기록하며 전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흥미로운 점은 저작권료에 얽힌 비화다. 약 20년 동안 ‘화개장터’는 조영남의 단독 작사·작곡으로 알려져 그가 모든 권리를 향유했으나, 훗날 김한길 전 장관이 작사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현재 작사 저작권료는 김 전 장관에게도 배분되고 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