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 초, 한국화장품 ‘쥬단학’의 전속 모델로 활동하며 전국의 화장품 대리점을 장식했던 배우 장미희는 당대 대중문화의 아이콘이자 움직이는 중소기업이었다.
당시 장미희가 기록한 몸값은 현재의 가치로 환산해도 가히 독보적이다. 기록에 따르면 그는 영화 출연료로 3,500만 원을 기록했는데, 이는 당시 최고가였던 배우 김혜자의 1,500만 원보다 두 배 이상 높은 금액으로 한국 영화사상 최고액을 경신한 수치였다.

광고계에서의 위상은 더욱 압도적이었다. 시청률 70%를 기록한 드라마의 주역이었던 그는 ‘쥬단학’ 전속 모델 계약료로 최소 5,000만 원 이상의 파격적인 대우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980년대 초반 강남 은마아파트 분양가가 약 2,000만 원 안팎이었음을 고려하면, 광고 한 편으로 아파트 두 채를 사고도 남는 거액을 손에 쥔 셈이다.

그러나 ‘쥬단학 여신’으로 군림하며 부와 명성을 누리던 장미희는 1982년, 전성기 도중 돌연 미국 유학길에 오르며 자취를 감췄다. 갑작스러운 공백을 두고 연예계에는 정치 권력과의 연관설 등 확인되지 않은 온갖 풍문이 쏟아졌다.
장미희는 이에 대해 “공부하고 싶어 떠난 것”이라며 일축해왔으나, 세간의 의구심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후 2007년경, 당시 유학 과정에서 취득했다고 알려진 학력 중 일부가 허위로 밝혀지는 ‘학력 위조 논란’에 휩싸이며 그의 화려했던 과거가 다시 한번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장미희는 이러한 부침 속에서도 전문성을 바탕으로 연기 인생의 2막을 열었다.

그는 오랜 기간 명지전문대학 연극영상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서 자신의 전문적인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2025년 2월에는 9년간 영화제를 이끌어온 정지영 감독의 뒤를 이어 제29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조직위원장으로 위촉되는 등 여전한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댓글0